"김준면, 박찬열! 너희 복도로 나가!"
"아씨, 너 때문이잖아..."
"내가 뭐."
"이 녀석들 빨리 안 나가?"
"나가요, 나가~"
"아, 쌤 때리지 마세요!"
으이씨, 너 때문이야. 준면이 귀 옆으로 바짝든 팔로 찬열의 팔을 툭 쳤다. 죽을래? 찬열이 인상을 쓰며 내려다보자 준면이 흠칫, 무릎걸음으로 옆으로 한발짝 떨어졌다. 박찬열 너 때문에 이게 뭐야. 투덜투덜, 연신 불만을 토해내는 입술을 찬열이 콱 움켜쥐었다. 귀 따가워 죽겠네. 준면은 차마 큰 소리도 못 내고 눈만 꿈뻑이며 찬열을 쳐다보았다. ...좀 조용히 좀 하라고. 찬열이 별안간 얼굴이 벌개지며 고개를 돌렸다. 뭐야, 왜 저럼? 준면이 입술을 삐죽였다. 야, 김준면. 찬열이 복도 끝을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뭐. 준면이 부루퉁하게 대답했지만 찬열은 더이상 말을 잇지 않았다.
"뭐야, 왜 말을 안 해."
"그냥, 불러 봤어."
2. 김종인X김준면
어? 종인이다. 현관 앞에서 운동화 앞 코를 바닥에 툭툭 두드리던 준면이 교문 앞에 자전거를 세워둔 채 서 있는 종인을 발견하고 교문으로 달려갔다.
"종인아!"
"뭐하러 달려와요. 더운데."
"1학년 보충은 진즉 끝난 거 아니었어?"
"그냥... 남아서 공부 더 했어요."
"공부 열심히 하는구나!"
준면이 해사하게 웃자 종인이 고개를 돌리며 볼을 긁적였다. 그리곤 준면 쪽을 향해 손을 척. 가방 이리 줘요.
자전거 뒤에 가방 두 개를 매달고서 종인과 준면은 해가 져가는 골목길을 나란히 걸었다. 해 엄청 길어졌다, 그치? 그러게요. 근데 종인이 너 안 답답해? 뭐가요? 자전거 타고 이렇게 느리게 가면... 쫑알쫑알 쉴새 없이 말을 늘어놓는 준면을 보면서 종인은 괜히 가슴께가 간지러운 느낌이 들었다. 우리 아이스크림 먹을까? 형이 사올게! 종인인 뭐 좋아해? 눈을 땡그랗게 뜨고 묻는 준면을 보자 근원을 알 수 없는 간지러움이 온 몸을 타고 퍼져가는 느낌이 들었다.
3. 변백현X김준면
"나 오늘 노래 부르니까 잘 봐라~ 그렇다고 오빠한테 반하진 말고~"
"엿."
목이 빳빳해져 한껏 뻐기는 백현을 향해 준면은 가운데 손가락을 들어보였다. 곧 백현의 니킥이 날아왔지만...
확실히 백현은 노래를 잘했다. 입담도 좋은 편이어서 해마다 축제에 단골손님으로 등장하곤 했다. 가끔은 옆 학교인 여고에까지도 찬조공연을 가곤 했으니 말 다 했지, 뭐. 준면은 백현의 목소리를 좋아한다. 너 진짜 노래 잘한다! 목소리 진짜 좋아. 처음 만났던 날 준면은 아마 그렇게 말했었던 것 같다. 목소리 좋다며 감탄하는 목소리가 더 좋아서 백현은 얘가 날 놀리나 하는 생각도 했었지만 그게 놀리는 게 아니라 진심이라는 걸 아는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준면은 단순한 편이었다. 감상이나 기분 같은 걸 바로바로 입 밖으로 내뱉곤 했다. 백현아 네 노래 들으니까 가슴이 두근두근해. 이 노래가 이렇게 좋았었나? 언젠가 준면은 노래방에서 백현의 노래를 듣고 그렇게 얘기 했었다. 어두운 조명 아래 반짝이는 준면의 얼굴을 보는 백현의 마음이 더 두근거리는 건 모르고서 말이다.
확실히 백현은 무대 체질이었다. 어느정도 두근거림도 가라앉자 백현이 눈을 이리저리 굴렸다. 준면을 찾는 것이었다. 익숙한 얼굴들은 몇 보였지만 준면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노래는 절정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오늘은 확실히 컨디션이 좋긴 했지만 연습하면서 몇 번 삑사리가 났었던 부분이 다가오자 백현은 조금 긴장했다. 다른 바쁜 일 있나. 여기저기 바쁘게 움직이던 눈동자가 무대 아래로 향했다. 등잔 밑이 어둡다더니. 백현은 마침내 하얀 얼굴을 발견했다. 준면의 반짝이는 눈도 백현을 향하고 있었다. 둘의 시선이 엉켰다.
매끄러운 고음이 노래의 절정을 찍었다. 준면을 바라보던 백현이 씨익 웃었다. 준면도 엄지를 치켜들었다. 잘했어, 백현아.
4. 오세훈X김준면
아, 나도 놀고 싶다. 그늘에 앉아 무릎을 끌어안은 준면이 중얼거렸다. 모처럼 바닷가로 놀러 나왔는데 준면은 감기에 걸려 물에 발만 담가보았다. 텐트 안에 혼자 누워 있던 준면이 슬슬 해가 지기 시작하자 바닷가로 나왔다. 준면을 발견한 세훈이 팔을 흔들었다. 형! 준면은 손을 가볍게 흔드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대답이 시원찮았는지 세훈이 물에서 나와 모래사장을 가로질렀다. 형, 혼자 심심하죠. 흠뻑 젖은채 옆으로 와 앉는 얼굴이 발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너 얼굴 완전 탔다. 진짜 빨개, 너. 준면의 말에 세훈이 볼을 쓱쓱 문질렀다. 며칠 뒤면 돌아와요. 하면서 웃는 얼굴이 해맑았다. 가서 놀아도 되는데. 준면이 세훈의 어깨 위로 비치타올을 덮어주자 세훈이 어리광 아닌 어리광을 부렸다.
"힘들어요, 형 옆에 있을래. 다른 형들이 물 완전 먹였어요."
"내가 나중에 복수해줄게."
"진짜죠?"
"당연하지."
"어! 형! 저거 봐요. 해 진다."
세훈이 별안간 소리를 지르더니 바다 끝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어, 진짜네. 불이 붙은 것처럼 빨간 해가 바다 끝에 걸려 있었다.
"예쁘다."
"형도 예뻐요."
세훈의 말에 준면이 고개를 돌렸다. 세훈이 장난기 가득하게 웃고 있었다. 준면과 세훈의 얼굴에 노을이 쏟아졌다.
"이제 형도 얼굴 빨개졌어요."
5. 도경수X김준면
"나도 서울로 원서라도 한 번 써볼 걸..."
"자주 내려올게."
"그치만..."
준면이 말을 더 잇지 못하고 베개에 얼굴을 묻었다. 경수가 서울의 유명 대학에 붙었을 때 준면은 본인이 대학에 붙었을 때 보다도 더 기뻐했었다. 읍내에 걸린 플랜카드까지 찍어 사진으로 남겨뒀었다. 하나도 기뻐하면 안 됐었는데. 준면은 그렇게나 신이 나서 방방 뛰었던 것이 조금 억울해졌다. 나 내려오면 열 일 다 제쳐두고 와야 돼, 너. 경수의 손이 준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당연하지... 어쩐지 준면은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단상 위에 올라 답사를 낭독하는 경수의 모습은 멋졌지만 그만큼 멀어진 기분이었다. 강당 뒤쪽에 앉은 준면은 마음이 뒤숭숭했다. 기쁘기도 하면서 어쩐지 입안이 썼다.
같이 사진 찍자. 교무실이며 어디며 여기 저기 불려다니던 경수가 겨우 빠져나와 준면을 찾았다. 우리 사진 좀 찍어주라. 지나가던 반 친구에게 카메라를 건넨 경수가 준면의 옆으로 와 섰다. 하나, 둘, 셋. 꽃다발을 든 경수와 준면이 나란히 서 사진을 찍었다. 잠깐만. 하나만 더 부탁할게. 카메라를 건네받은 경수가 가방에서 꺼낸 즉석 카메라를 다시 건넸다. 준면에게 꽃다발을 밀어준 경수가 준면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고마워. 카메라를 돌려받은 경수가 준면에게 돌아와 손바닥보다 작은 사진을 건넸다.
"자. 잃어버리지 마. 부모님이랑 점심 먹으러 갈 거지? 맛있는 거 먹고, 보고 싶으면 연락 해."
준면의 어깨를 두어번 두드린 경수가 멀어져갔다. 준면은 인사도 하지 못한 채 손 안의 사진만 내려다 보고 있었다. 하얀색이었던 사진이 점점 제 색을 찾아갔다. 교복 위에 남색 더플코트를 입은 경수가 환하게 웃고 있었다. 준면은 웃는 것도 우는 것도 아닌 얼굴이었다.
"경수야...!"
벌써 교문까지 간 경수를 향해 준면은 힘껏 뛰었다.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돌아본 경수의 품 안으로 준면이 뛰어온 속도 그대로 부딪히듯 안겼다. 경수야... 흐읍, 나 절대로 잊어버리면 안 돼... 나도 너 절대 안 잊어버릴테니까... 흑, 절대 잊어버리지 마... 품 안에 안겨 엉엉 우는 준면의 동그란 머리꼭지를 쓰다듬으며 경수가 대답했다. 응. 절대 안 잊어버릴게.
경수가 피처링 했대서 들었는데 으잉ㅠㅠ 진짜 너무 좋아ㅜㅜ 듣자마자 저거 다 상상했어ㅜㅜ
아련한 첫사랑들...ㅁ7ㅁ8
마지막 됴준 쓸 때는 진짜 눙물나서 증말...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