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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우면, 뱀파이어 썰

비타면 2013. 7. 2. 15:54
민석이는 고아라서 뒷골목 전전하면서 앵벌이하고 빵 훔치고 이런 식으로 먹고 살았어. 10살이 되던 해에 혹한기가 찾아왔는데 몇 십 년 만에 폭설이 내린 거야. 집도 없이 골목에서 쪼그려 자고 그러던 민석이는 거의 죽은 거나 다름없었음. 당장이라도 숨이 넘어가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정말 미약하게 목숨이 붙어있는 상태였는데 그 골목을 지나던 수호가 눈 속에 파묻혀 있던 민석이 멱살을 잡아서 꺼내들어. 죽음의 냄새를 맡고 꺼내들긴 했는데 너무 더러운 거야. 더러워. 하고 민석일 집어던지려던 수호가 갑자기 생각이 바뀌었는지 민석이 목을 물어뜯어. 피를 쭉쭉 빨자마자 가뜩이나 껄떡이던 숨이 쇼크로 끊어져버리고 말아. 한참이나 어린아이의 목에 이를 박고서 피를 빨다가, 숨이 멈춰서 더 이상 심장이 뛰질 않으니까 피도 안돌고 아무리 빨아도 피가 안 나오는 거야. 쳇. 수호가 아쉬운 듯 입맛을 다시면서 고개를 들고는 축 늘어진 아이의 시신을 손에 들고 눈앞에서 달랑달랑 흔들어. 이걸 어떻게 처리할까 잠시 고민하던 수호의 머릿속에 지난 번 무도회에서 보았던 장면이 생각나. 뱀파이어 사교계에서 이름깨나 날린다는 백작 하나가 인간의 아이를 뱀파이어로 만들어서 데리고 왔던 게 기억났거든. 민석일 바닥에 떨어뜨리듯이 내려놓더니 망토 안에서 꺼낸 작은 단도로 제 손목을 그어. 그리곤 아이의 입가에 가져다 대지. 손목을 쥐었다 폈다 하면서 아이의 입으로 피를 흘려 넣던 수호. 배도 채웠겠다, 재생속도가 더 빨라져서 손목을 다시 한 번 그으려고 하는데 순간 축 늘어져있던 민석이가 꿈틀대면서 움직이기 시작하더니 수호의 손목에 입을 대고 쭉쭉 빨아. 민석이도 이제 뱀파이어가 된 거지. 자기 피를 마시게 해서 뱀파이어로 만들면 자식의 개념과도 비슷해져서 수호는 잠시 흐뭇한 얼굴로 바라보다가 민석이가 피를 너무 빠니까 인상을 찌푸리면서 발로 차서 밀어버려. 저만치 나가떨어져서 배를 부여잡고 켁켁대던 민석인 이내 정신을 차려. 나는 분명 죽었을 텐데 어떻게 된 거지? 하면서 멘붕이 오는데 검은 망토자락을 차르륵 휘날린 수호가 친절한 얼굴로 말하지.


"내가 널 살렸단다. 넌 이제 새 삶을 얻게 된 거야. 그런 의미에서 이 몸이 네 아버지가 되어주도록 하지. 새로운 이름도 지어주도록 할까? 이제부터 네 이름은 시우민이야."





그렇게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가 된 수호와 시우민은 이제 서로 같이 다니게 돼. 사교계에도 데리고 나가서 자신도 아들을 만들었다며 자랑 아닌 자랑을 하고 다녀. 대개 서양인이거나 간혹 동양인이더라도 서구의 미로 잘생기고 예쁜 뱀파이어들 사이에서 슈밍의 외모는 단연 눈에 띄었지. 수호도 슈밍에게 쏟아지는 관심을 즐겨서 한동안 둘은 그렇게 즐겁게 살아. 








수호는 특이한 구석이 있었어. 흡혈을 할 때 항상 섹스 도중에 하는 거야. 인간의 흥분이 최고치에 달했을 때 먹는 피가 제일 맛있다나 뭐라나. 일부 소수 혈통을 가진 이들의 종족 번식을 위한 것이 아니라면. 순수 혈통의 뱀파이어들은 굳이 성행위를 하지 않아. 가장 큰 쾌감을 느끼는 행위는 흡혈임에도 불구하고 수호는 흡혈보다는 섹스 자체를 우위에 뒀어. 아주 가끔은 흡혈이 없는 섹스도 하곤 했지. 

어느 날 시우민이 밖에서 흡혈을 하고 동이 트기 전에 저택으로 돌아왔는데 저택이 평소랑은 분위기가 달랐어. 뱀파이어가 되고 나서 예민해진 청각으로 멀리서부터 신음소리가 끊임없이 들려오는 거야. 수호의 목소리였어. 시우민이 조용히 걸음을 옮겨. 저택 안쪽에 있는 수호의 방 앞에 도착했을 때 문은 조금 열려진 상태였어. 좁은 틈새였지만 방 안쪽을 보는 덴 부족함이 없었지. 수호가 교성을 내지르면서 마구잡이로 흔들리고 있었어. 손목에 걸려 벗겨지다 만 하얀색 실크셔츠가 묘하게 시우민을 자극했지. 남자는 사교클럽에서 몇 번 본 적이 있던 얼굴이었어. 크리스라고 했던가? 키가 크고 핸섬한 남자였지. 남자의 목을 감싸 안고 매달리던 수호가 침대에 처박혀. 굴욕적으로 엉덩이를 쳐든 자세로 남자의 것을 받아내던 수호와 일순간 눈이 마주쳤어. 시우민이 문 밖에서 보고 있단 걸 알면서도 수호는 조금도 부끄러움 없이 신음을 내질러. 조금 갈라진 듯한 목소리로 크리스의 이름을 부르기도 했지. 수호의 엉덩이 사이로 빠르게 드나드는 남자의 것을 바라보면서 시우민은 처음 자위란 것을 했어.



그 무렵일 거야. 시우민이 더 이상 나이를 먹지 않는 자신에 대해 회의적이 된 것이. 수호와 함께 한 지도 벌써 한 세기가 지나가는데 시우민은 전혀 나이를 먹지 않았어. 여전히 10살의 외형을 가지고 있었지. (뱀파이어로 태어나면 나이를 먹어서 리즈시절에 연령 변화가 멈추지만 타의로 뱀파이어가 되면 그 나이에서 더 이상 성장이 없다는 전제 하에) 시우민은 10살에 수호에 의해서 뱀파이어가 됐으니 평생을 그렇게 살아야 하는 거야. 시우민은 그때 처음으로 수호를 원망해. 왜, 왜 날 이런 몹쓸 것으로 만든 거예요. 나도 당신처럼 자라고 싶은데. 왜 날 이 몸뚱이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만든 거냐구요. 수호는 발밑에서 울부짖는 시우민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면서 쓰게 웃어. 우리 아들이 많이 자랐구나.






얼마 후 수호가 별안간 한국으로 가자는 제안을 해. 기분전환도 할 겸 나갔다 오자는 거였는데 그 무렵의 시우민은 망나니처럼 살고 있었어. 흡혈을 너무 많이 해서 문제가 될 정도였지. 사실 수호가 한국으로 가자고 제안한 것도 뱀파이어 커뮤니티 내에서 시우민이 구설수에 오르고 있었기 때문이야.





한국으로 왔지만 두 사람은 밤에만 나갈 수 있기 때문에 행동에 제약이 많지. 거기다가 한국에도 뱀파이어들이 있긴 하지만 둘의 홈그라운드가 아니기 때문에 피를 조달하는데도 애를 먹어. 한국에 도착한 직후 둘은 며칠은 적응 차원에서 수호의 별장(이라곤 하지만 그냥 단독주택임)에서 처박혀 있었어. 수호가 이곳 뱀파이어 커뮤니티와 접촉을 할 시간이 필요하기도 했고. 중국에 있을 때는 막말로 지나가던 사람 하나 잡아와서 물어뜯어도 아무런 제약이 없었는데 뭐 저렇게 고해야 할 데가 많은지 시우민은 짜증이 나는 거야. 홈그라운드에 있을 때의 수호는 뱀파이어 중에서도 계급이 꽤 높은 편에 속했거든. 무서울 게 없었지. 당장이라도 뛰쳐나가고 싶은 걸 수호가 착하지? 어딜 가든지 상도라는 게 있는 거란다. 하면서 애기 다루듯이 시우민을 달래. 머리를 쓰다듬는 손을 탁 쳐내면서 애 취급 말라는 10세 아동의 모습을 한 시우민 씨(100세 이상 추정)






그렇게 며칠간 수호의 물밑 작업이 끝나고 드디어 외출 금지령이 풀리게 돼. 시우민은 그동안 굶주렸기 때문에 아무나 닥치는 대로 피를 빨았지. 도가 지나친 그의 무분별한 흡혈로 인해 뉴스는 연일 난리가 납니다. '온 몸에 피가 빠진 채로 발견되는 괴사건 발생.' 사건은 항상 어느 한 동네를 중심으로 일어나는데 그 동네에 살고 있는 평범한 대학교 2학년생 준면이는 약간 안전 불감증이라 매일 같이 뉴스에서 괴사건을 떠들어대도 꿋꿋하게 늦은 시간까지 알바를 하고 돌아갑니다.


그날도 알바를 마치고 자취방으로 돌아가는 길이었어. 자취방 가는 길에 작은 공원이 있는데 공원 놀이터에 웬 꼬맹이가 하나 앉아 있는 거야. 이 늦은 시간에. 오지라퍼 준면이는 애가 걱정이 돼서 공원으로 가. 아이가 앉은 그네가 끼익, 끼익 소리를 내며 움직일 때마다 소름이 끼치는 건 나뿐이겠지ㅜㅜ 준면인 여기선 강심장으로 나올 거야ㅜㅜ 암튼 아이의 어깨를 짚은 준면이가 꼬마야, 늦었는데 여기서 뭐하니? 하고 물어. 아이는 놀라는 기색도 없이 느릿한 움직임으로 고개를 돌려서 준면이를 쳐다보기만 할 뿐이야. 외꺼풀인 아이의 눈매가 묘해서 준면이는 왠지 모르게 소름이 끼쳤지만 다시 한 번 물어봐. 



"부모님 어디 계시니?" 



재차 물었지만 아이는 여전히 답이 없어. 이거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던 준면이가 112에 신고하려 핸드폰을 꺼내는데 아이가 입을 열어. '형, 나 형네 집에 가면 안 돼요?' 께름칙하지만 그래도 아이를 혼자 두는 것보단 나을 것 같아서 준면이는 그러자고 답해. 사실 저렇게 쪼끄만 아이가 뭐 위험할까 하는 생각도 있었고. 으이그, 이 안전 불감증아ㅜㅜ





그렇게 시우민은 준면이의 자취방으로 가게 됩니다. 뱀파이어는 오감이 인간보다 뛰어나기 때문에 준면이가 골목에 들어서는 것부터 다 알고 있었어. 자신에게 가까이 다가오자 귀찮으니까 죽여 버려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준면이의 얼굴을 보니까 그럴 수가 없는 거야. 아버지인 수호랑 쌍둥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엄청 닮은 얼굴이었거든. 인간인 준면이쪽이 더 생기 있고 예뻐 보이기까지 했지.

“꼬마야, 애들은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야 쑥쑥 자라는 거야.”



사실 백 살도 넘게 먹은 뱀파이언 줄도 모르고 준면이는 시우민과 함께 잠자리에 들어. 날 밝으면 부모님 찾으러 같이 경찰서 가야한다? 하고 신신당부를 하면서. 그날 밤 준면이의 꿈자리는 아주 사나워. 무언가 무거운 것이 몸을 누르는 느낌이야. 가위라고는 한 번도 눌려본 적이 없는데 처음으로 눌려봤어. 와중에 무서워서 차마 눈은 뜨지도 못하고 뭔가 차가운 것이 제 뺨을 훑고 지나가자마자 준면이는 정신을 잃어버려. 준면이야 눈을 안 떠서 모르겠지만 사실은 가위가 아니라 시우민이 준면이 위로 올라탄 거야. 준면이한테서 아주 달콤한 피 냄새가 났거든. 준면일 만나기 전에 이미 흡혈을 한 뒤라서 식욕은 없었지만 준면이의 피는 슈밍의 취향 직격타라서 향이라도 마음껏 음미한 거지. 그리고 준면이가 아버지 수호를 닮았기도 했고. 다음날 아침 일어났을 때 역시 시우민은 사라지고 없었음. 준면이는 귀신에 홀린 기분이지만 이상한 아이네. 하고 넘어가.







방학은 했지만 동아리 활동이 있었기 때문에 준면이는 학교로 향하지. 동방으로 가는 중에 과 후배 백현일 만났는데 대뜸 준면이한테 형 어젯밤에 완전 잘 놀던데요? 하는 거야. 준면이는 얜 또 무슨 개소리야. 이런 표정으로 보고만 있고. 준면이 표정이 영 아니니까 백현이가 형 어제 클럽 안 갔어요? 하고 물어보는데 준면이는 어제 늦게까지 알바를 했지 클럽 같은 덴 코빼기도 안 비췄어. 퉁명스럽게 나 어제 알바 했는데. 하니까 백현이가 어? 완전 형이었는데... 하면서 볼을 긁적여. 준면이는 어두워서 잘못 봤겠지. 하면서 넘어가고. 그렇게 그냥 닮은 사람이었나 보다. 하면서 잊어버렸는데 새벽마다 동기며 선후배들한테서 연락이 오는 거지. 너 지금 클럽이냐면서. 그때마다 준면이는 나 지금 알바중인데 뭔 소리냐면서 지금 일하는 사람 염장 지르는 거냐며 받아쳐.






한편 시우민은 준면이의 피 냄새를 맡은 이후로 흡혈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러. 무엇을 마셔도 맛이 없었거든. 그리고 부모님 어디 계시니? 하고 물어보던 하얀 얼굴이 자꾸만 생각나는 거지. 생각이 나니까 보고도 싶고. 처음 만난 날 이미 집을 알아낸 상태이므로 시우민은 늦은 밤마다 준면이의 자취방으로 찾아가. 요즘 날씨가 더워서 준면이가 맨날 베란다 문을 열어놓고 잤거든. 그리고 준면이는 그때마다 어김없이 가위에 눌린다고 한다... 준면이의 피를 빨아보고 싶은데 물면 자제를 할 수 없는 슈밍은 준면이가 죽어 버릴까봐 이상형을 앞에 두고 피를 빨지도 못해. 매일 그림에 떡마냥 구경만 하고 가는 거지. 다른 피를 마실 생각도 안 하니까 애가 점점 푸석푸석해지고 생기를 잃어가. 동 트기 전에 돌아오는 슈밍을 보는 수호는 의심을 하기 시작하지. 애가 밤마다 나가긴 하는데 피를 빠는 것 같지는 않으니까. 수호는 피를 빨고 싶을 땐 빨아야 하는 거라고 항상 가르쳤거든. 그게 뱀파이어의 본능이라고. 본능을 죽이는 것만큼 미련한 짓은 없다고.


며칠 슈밍의 뒤를 캔 수호는 방황의 원인이 준면이라는 것을 알아내. 그리고 준면이에게 흥미를 느끼지. 자기를 닮은 것부터 해서 피가 아주 달콤한 향을 풍긴다는 것까지. 여느 날처럼 시우민은 동이 트기 직전에야 별장으로 돌아왔어. 오늘도 역시나 피를 빤 것처럼은 보이지 않는 얼굴이야. 그래서 슬쩍 시우민을 떠봐. 아들, 요즘 계속 사냥에 실패하나보네. 얼굴이 아주 엉망이야. 피를 못 구하는 거면 이 아버지가 구해다주련?  빙글빙글 웃는 얼굴로 말을 건네는 수호가 슈밍은 맘에 안 들어. 아버지가 무슨 냄새를 맡고 이러는 거구나 싶은 거지. 그냥 신경 끄세요. 하는 말만 남기고 방으로 들어가는데 수호가 의미심장하게 말을 해.





"그 애. 피가 참 달콤할 것 같더라. 나랑 닮은 것 같기도 하고..."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슈밍이 붕 날듯이 수호에게로 점프해서 목을 졸라. 내 사냥감입니다. 건드리지 마세요. 으르렁대듯이 하는 말에 수호는 여전히 빙글빙글 웃기만 해. 그런 태도에 열이 뻗치는 건 시우민 뿐. 손에 점점 힘이 들어가고 결국 두둑 하고 목뼈가 부러지는 소리를 듣고 나서야 씩씩대면서 수호에게서 떨어져나가. 시우민이 방으로 들어가고 나서야 수호는 자리에서 일어나지. 목을 이리저리 돌려가며 뼈를 맞추던 수호가 무표정으로 중얼거려. 보기만 하면 애완동물이지 사냥감이 아니야.








그날 이후로 수호의 외출이 잦아졌어. 수호는 시우민보다는 피에 대한 절제력이 강해서 피를 그렇게 자주 마시지 않아도 됐거든. 수호의 외출이 잦아지자 불안한 건 시우민이야. 매일 같이 준면이 주위를 돌면서 감시를 하지만 10살 아이의 몸으로는 제약이 너무 많아. 준면이가 클럽 같은 데를 간다던가 하면 따라 들어갈 수도 없고 아주 미치는 거지.








준면이는 자기를 봤다는 제보(?)가 너무 많이 들어오니까 알바 쉬는 날 결국 클럽엘 가게 돼. 후배 백현과 함께 왔는데 백현은 들어오자마자 물 만난 고기마냥 신이 나서 어디로 사라져버렸고 준면이는 혼자 뻘쭘하게 서 있어. 그리고 무언가를 찾는 듯 두리번거리지. 그때 누군가 준면이에게 말을 걸어. ‘뭘 그렇게 찾아요?’ 뒤에서 소리가 들리자 준면이는 본능적으로 뒤를 돌아보는데 순간 심장이 멎을 뻔 했어. 자기랑 아주 닮은 사람이 눈앞에 있었거든. 분위기 같은 게 조금 다르긴 하지만 전체적인 생김새는 아주 판박이였어. 이게 바로 도플갱어인가? 싶을 정도로. 그동안 사람들이 왜 그렇게 준면이한테 연락을 했는지 이제 조금 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저렇게 똑같이 생겼는데 착각할 만도 하지. 마치 거울을 보는 듯한 느낌에 조금 묘한 기분이 들기도 해. 그때 수호가 준면이에게 잔을 내밀어. 한 잔 마셔요. 뭔가 몽환적이고 몽롱한 어투에 준면이는 별 의심 없이 잔을 받아들었고 술을 마셔. 그리고 그날따라 쉽게 술에 취해버리지.












시우민은 준면의 집 근처에서 기다리다 결국 준면이를 보지 못하고 해가 뜰 시각이 되어서야 별장으로 돌아왔어. 별장 문을 열고 들어선 순간 수호의 콧노래가 들려와. 본능적으로 뭔가를 느낀 시우민이 수호의 방문을 벌컥 열어젖히자 수호의 침대에 준면이가 누워있었어. 정신을 잃고 쓰러진 준면이를 보자마자 시우민이 이성을 잃고 수호한테 달려들어. 내가 건드리지 말랬잖아! 바닥으로 넘어진 수호가 위로 올라탄 시우민을 보며 어깨를 으쓱해. 사냥하는 법을 잊어버린 것 같길래 다시 알려주려고 데려온 건데. 안 되니? 그리곤 시우민을 벽으로 날려버려. 시우민이 벽에 부딪혀 바닥으로 떨어지고 한참을 켈룩대지. 어디 뼈가 하나 부러진 것 같기도 한데 요즘 통 흡혈을 못했던지라 재생 능력이 떨어져서 몸이 쉽게 돌아오지 않는 거야. 표정이 사라진 수호가 바닥에 널부러진 시우민을 내려다보며 거칠게 오르락내리락 하는 작은 가슴을 꾸욱 밟아. 아프니? 아프지? 아프면 피를 마셔야지 아가. 시우민은 쿨럭쿨럭 하는 기침을 뱉고 수호는 여전히 무표정으로 시우민을 집어 들어. 그리고 침대 위로 던지지. 곧 죽을 것처럼 기침을 하면서도 시우민이 피를 빨지 않자 수호가 화를 내. “빨리 피를 빨아! 흡혈을 하란 말이야! 너 네가 무슨 인간이라도 되는 줄 아나본데 넌 그냥 뱀파이어야. 인간의 피를 마셔야만 살 수 있는 존재라고! 죽고 싶어?!” 그리곤 억지로 시우민을 잡아끌어 준면의 목으로 가져다대지. 하지만 시우민은 고개를 돌려버리고 화가 난 수호는 힘없이 늘어진 준면이의 팔목을 물어뜯어. 피가 뚝뚝 흐르는 팔목을 시우민의 입에 가져다 대고 시우민은 거부하지만 달콤한 향기에 결국은 본능을 못 이기고 피를 빨고 말아. 피를 빨면서도 시우민은 서럽게 엉엉 울어. 따뜻했던 피가 조금씩 식어가더니 이젠 빨아도 나오지 않았어. 준면이 죽은 거야. 흡혈을 했기 때문에 몸이 재생된 시우민이 울부짖으면서 수호를 노려봐. 당신 때문이야! 당신이 이 사람을 죽였어! 수호는 코웃음을 치지. 피를 빤 건 내가 아니라 너야. 슈밍이 너갱이가 나간 얼굴로 핏기 없는 준면이의 뺨을 때려도 보고 마구 흔들어도 보지만 준면이는 깨지 않아. 그러다가 문득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제 팔목을 물어뜯는 슈밍. 피가 흐르는 팔목을 준면이 입에 가져다 대지만 수호에 의해서 뱀파이어가 된 시우민은 뱀파이어를 만들 수 있는 번식력이 없어. 그걸 알고 있는 수호는 어이가 없어서 웃기만 해. 자꾸만 아무는 상처를 계속 계속 물어뜯으면서 준면이의 입으로 가져다 대지만 무슨 짓을 해도 준면이는 살아나지 않아. 오열하던 시우민의 눈빛이 달라지더니 협탁에 있던 단도를 집어 들어. 그리곤 의자에 앉아있던 수호에게로 단숨에 점프해서 날아가지. 수호는 모든 걸 다 알고 있다는 듯한 얼굴이야. 불쌍한 우리 아들. 눈물로 엉망이 된 시우민의 볼을 쓰다듬자 슈밍이 들고 있던 단도를 수호의 가슴에 찔러 넣어. 쿨럭, 피를 토해내지만 수호는 아랑곳 않고 시우민의 볼을 계속 쓰다듬지. 시우민이 몇 번인가 더 수호의 가슴팍에 단도를 찔러 넣고 나서야 수호의 움직임이 멈춰. 그리고 그제야 정신이 돌아온 시우민은 자신이 무슨 짓을 했는지 알아차리지. 가뜩이나 창백했던 얼굴이 생기 없이 말라비틀어져 죽어간 모습을 보자 시우민은 손을 덜덜 떨면서 수호의 손을 만져보지만 가루가 되어 날아가 버릴 뿐이야. 아버지... 아버지... 재가 되어버린 수호를 보며 또다시 오열하는 시우민.